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사랑을 받기만 했던 나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를 알지 못했다
요즘은 어디에서든지 '사랑'이라는 단어를 쉽게 찾아볼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도대체 얼마만큼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완성이나 결과를 향하는 것이 아닌
달리는 과정, 그 자체일 뿐이라는 것을...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의 사랑시와 노래 그리고 음악이
넘쳐 흐르고 있는 우리들의 세상이지만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시를 읽을 만큼 외롭다
그러한 곳에서 나는 하늘을 향해 뿌리내린 커다란 나무가 되어
세상을 향해 가지를 늘어뜨리고 향기로운 꽃과 열매를 내어
외로운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다
27 DEC 2014 권려진